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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규범 1주기 추모 파티 : 허허허 뜸절 (Jin Kyu-beom/Ddem 1st Memorial Party : Huh Huh Hun Ddem's Day)

장르         추모 파티 (Memorial Party)

역할         공동기획 (Co-Planner)

장소         제주도 서귀포시 하원동 모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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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하지 못한 추모에 대하여 (이상)

 

누구나 살아가며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합니다. 그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며, 떠나간 이와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이들 모두가 연결되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추모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해보았습니다. 추모는 사전적 의미로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 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규범 혹은 뜸이라고도 부릅니다. 타고난 큰 덩치와 험악한 인상으로 인해 살면서 유독 불합리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술담배를 즐겨했고, 씻는 것을 멀리했습니다. 인체의 그 어떤 곳이라도 뚫을 수 있는 피어싱 아티스트였고,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의 해방을 염원하며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녹색당원이었고, 음악을 좋아했으며, 종종 아니 자주 노상방뇨를 했습니다. 스웨그와 낭만이 넘치는 멋쟁이였고, 땅굴 파고 들어갈 계획을 짤 정도로 제주 제2공항 반대활동에 진심이었습니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고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채식을 실천한 동물권 활동 옹호자였어요. 단순하지만 섬세했고, 표현에 서툴렀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느 죽음과 마찬가지로 규범의 죽음 또한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작년 여름, 급작스런 비보에 많은 친구들이 모였고 서로를 안아주며 그 시간을 함께 견뎌냈습니다. 뜸에 대한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연결되었습니다. 동시에 각자가 알던 규범의 모습은 그가 지키며 살아온 삶의 작은 부분일 뿐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뜸이 얼마나 아름답고(다양한 관점에서) 다채로운 인간이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장례가 가능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장례를 마무리했고,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1주기가 다가옵니다. 기일이 가까워질수록 저는 종종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게 되곤 합니다.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 잠을 설치기도 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누릴 때마다 ‘아, 야이가 같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속으로 되뇌이게 됩니다. 더할나위 없이 그를 잘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서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이 꿈틀거림을 느낍니다. 규범의 죽음 이후 저에게 남은 그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저 또한 궁금합니다.

 

저는 알 수 없는 이 궁금증의 근원을 ‘아직 다하지 못한 추모’라 불러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의 답을 찾기 위해 고인을 기리는 1주기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떨림과 사랑의 마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합니다. 규범이가 살아 있을 때 속 시원하게 해주지 못했던 거나한 술상을 차려봅시다! 음식을 나누고, 뜸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합시다! 공연과 무엇이든 가능한 광기자랑 시간에 여러분의 재능과 애정, 똘끼를 나누어주세요!! 규범을 모르는 분들도 적극 환영합니다. 당신에게 정리되지 않은 이별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나누어주실 수 있나요? 새로운 관계의 연결과 확장을 실험합니다. 밤이 되면 강정천에 가서 알몸으로(원하는 사람에 한하여) 물에 풍덩 빠질 수 있어요. 규범이 마지막으로 살던 하원동에 있는 모두의 집에서 뒤풀이와 기절잠자리까지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그 무엇보다 재밌고, 자유로운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허허허 뜸절>

진규범/뜸 1주기 추모 파티 : 허허허 뜸절을 마치며

 

행사를 마치고 2주가 지나서야 인사를 전하네요. 한 달 동안 이어진 안개터널을 지나 이제 서귀포에도 해가 내리쬐고 있어요. 다들 안녕하신가요?

 

지난 7월 15일에 진행된 추모 파티는 성대하게 진행되었어요. 농부님들이 정성 들여 기른 건강한 재료들로 비건 잔치국수를 준비했고, 친구들이 가져온 음식과 술들로 풍요로운 저녁을 먹었어요. 규범이 사진 띄어놓고, 술도 올렸습니다. 창고 공간을 뜸기억소로 전환하여 운영했고, 친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채워진 허허허 스테이지도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밤에는 물안개가 자욱한 강정천 가시물에 가서 달빛 아래 음악과 함께 수영을 했고요. 뜸 가면을 앞에 두고 광기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고인을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추모의 자리에서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인상 깊은 순간들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며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모금을 제안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셔서 정말 부족함 없이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모금액 중 진행비를 제외하고 50만원이 남았고요. 이 돈은 돌고래해방운동을 하고 있는 ‘핫핑크돌핀스’에 후원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계속 농담을 사랑하며, 남은 삶을 살다 가기로 해요. 함께 해준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 모두에게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 규범이(뜸)도, 안녕!!

 

진규범/뜸 1주기 추모 파티 : 허허허 뜸절을 준비한 사람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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