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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살던 고향은 (Home I Lived)

장르         거리극 (Street Theater)

역할         연출, 창작, 기획 (Director,  Writer , Planner )

런타임      30분

장소          공공장소, 사적장소, 일상공간 ; 제주시내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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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너머가 떠오르는... - 한진오(후기 1)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긴 흙이 전부였다. 하나 남은 물뿌리개가 뿌려대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생명의 전부였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세상은 그뿐이다.

어떤 이는 엄마의 자궁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돌아갈 고향이라고 말했다. 내던지면 산산이 깨질 것 같은 양동이, 그것이 내 눈에는 내가 발 딛고 선 제주섬으로만 보였다. 이미 메말라 더는 채워지지 않는 눈물샘뿐인 절망의 섬으로만 보였다. 그럼에도 작달막한 골목을 시작으로 희망의 섬을 되찾으려는 춤과 노래를 만났다. 그들 모두 그들의 고향 제주섬을 되찾을 때까지 영원히 춤을 추는 빨간 구두의 카렌이었다.

굿처럼 아름답게...

걸작은 아닐지 모른다. 대작은 더더욱 아닐지도 모른다. 통념 속의 예술이었다면 말이다. 내가 본 거리극 “나의 살던 고향은”은 예술이 아닌 리미널리티(liminality)라는 공연학의 개념을 눈으로 확인시켜준 주술적 행위였다. 또한 예술이란 것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환기시키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굿이란 것이 본래 성속의 경계 자체를 무너뜨리고, 물질과 개념, 존재와 상상을 거침없이 뒤섞는 비결정성을 지닌다. 굿의 비결정성을 잇고자 무대를 박차고, 캔버스를 깨뜨리며 일상의 공간으로 뛰쳐나오는 전복의 예술을 일러 연극에서는 거리굿 또는 거리극이라고 부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은 그러한 경향의 작업들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

이처럼 비일상의 일상화, 일상의 비일상화를 시도하는 전위적인 작업들은 종종 만든 이들조차 만들어낸 이유를 잊어버리는 문제투성이, 실수투성이로 마무리되곤 한다. 내가 본 “나의 살던 고향은”은 달랐다. 추억 깃든 일상의 골목이 지닌 과거의 향수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 예술가,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앙상블을 이뤘기 때문만도 아니다. 무대가 지닌 결정성보다 일상의 공간이 지닌 비결정성을 너무나 적실하게 포착해낸 연출력에 나는 무릎을 쳤다.

자칫 해묵은 골목이라는 일상적 공간이 지닌 매력에만 빠질 수도 있었다. 작위적인 연출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비결정성을 역으로 이용하는 감칠맛에 빠질만도 했다. 그랬다면 무의미한 행위를 남발하며 예술입네 무게만 잡았을 텐데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드라마를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대사가 없을 경우 내러티브가 약하기 마련인데 그 또한 놓치지 않았다. 딸랑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 하나로 다 채워버렸다. 나의 체감으로는 30분가량 펼쳐진 작품이었는데 지루해질만하면 물 흐르듯이 다른 국면으로 이어졌다. 스펙타클한 재주를 부리는 눈요깃거리 하나 없었는데 몰입감이 높았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오직 신이라는 이름의 자연 뿐인바 “나의 살던 고향은”에도 당연히 아쉬운 점이 있다. 고통스럽겠지만 끊임없는 되새김을 거치면 부족한 부분은 충분히 다듬어지리라 믿는다. 아니면 또 다른 작업을 통해 놀라운 작품을 불쑥 꺼내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상상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너머를.

감상평 - 고권일(후기 2)

 

골목길과 계단. 계단이 객석이고 그 밑으로 이어진 골목이 무대인 공연. 그 골목길 자체가 모든 상황이 딱 맞는.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지 싶을정도로. 세트로 만들어도 이보다 좋을 순 없을 듯 했다. 지나가는 행인조차 배우가 되는 상황까지도.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공연이라는 점도 오로지 음악도 한 곡뿐이라는 점도 신선했다. 살던 마을을 다들 떠나는 장면에서는 내 젊은 시절이 잠깐 스치듯 했다. 무대가 끝나고 다들 전문가들답게 평가들이 나왔다. '동요가 쟁가가 됐어' 난 이해 할 수 없지만 음악전문가 귀엔 그렇게 들리나보다. '수화와 무용의 경계가 애매해' 전문 무대연출가 눈엔 그렇게 보이나 보다. 난 따라하기 쉬워서 좋았는데.

 

난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았다. 도중에 지나가던 비행기 소음이 무척이나 거슬렸고 행인 한 분이 배우인 줄 알고 유심히 보다가 그냥 이웃집 주민인걸 알고 깜짝 놀랐다는 말 이외엔. 나에게도 유년시절 시멘트 골목길에 대한 기억은 있었다. 서울 효창동 일대와 전남 광주의 이름 모를 골목길들. 그러나 워낙 잦은 이사에 딱히 정 붙일 풍경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오랜 기억을 주는 유일한 장소가 강정이다. 초등 3학년부터 살아 온 마을. 돌담으로 이어진 골목에서 돼지불알에서 발전한 짬공으로 축구하던 기억과 술레잡기와 막대기 하나 붙잡고 편을 갈라 칼싸움 하러 뛰어다니던 냇가로 이어지는 길들과 가지를 하나하나 밟고 올라 달과 별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게 해줬던 우람하기 그지없던 폭낭과 야트막하던 초가집 지붕들과... 이젠 사라진 풍경들이나 가슴에는 남아있는. 그런 기억들.

내 인생에 잠시 점을 찍어준 거리극 '나의 살던 고향은'이 고맙다.

뭉클한 계단 - 김섬(후기3)

늘 지나던 길이다. 작가회의 사무실에 갈 때마다 그 골목에 차를 세우곤 했다.

몰랐다. 스쳐간 그 길에 그리 포근한 계단이 있는 줄. 그리 아늑한 올레가 있는 줄. 아무 걱정없이 아이들이 뛰어 놀았겠다. 저녁을 짓던 엄마가 "기홍아, 밥 먹어~" 부엌에서 불러도 아이들이 집으로 달음박질 할 수 있었겠다.

우리는 포근한 계단에 나란히 겹쳐 앉았다. 아늑한 골목 무대가 포옥 품에 안겼다.

무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고추를 걷어내고 심은 쪽파에 아무렇지 않게 물을 주는 여배우.

여배우는 흙만 담긴 양동이를 미친 듯이 뒤진다. 그리고 동백 머리핀을 찾아 머리에 꽂는다. 흙을 뒤집어 엎고 양동이를 뒤집어 쓴다.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는 듯 밀려오는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듯. 울컥했다. 대사 하나 없이 저리 천연덕스럽게 43을 불러버리다니!

여배우가 퇴장한 골목 끝으로 다른 배우가 등장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노래가 흐르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노래를 춘다.

노래를 따라추는 사람들 앞에 저릿한 고향들이 스민다. 따습고 아프고 안타깝고 그리운 고향...

 

흙을 뒤집어 썼던 여배우가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한다. 양동이에 담긴 슬픈 기억들이 흐느끼며 갇힌다.

굉장한 공연이다. 성난오름에서도 잃어버린 마을에서도 함께 하고픈 공연이다.

시민예술단 워크숍 후기 - 테라(안무)

 

이 공연,'고향'과 '삶터'라는 주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나의 삶'이라는 다리를 지나지 않고서는 도달하기 힘든 것이었다.

또한 멤버들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없이는 우리가 도달하고 싶었던 고향, 그 따스함과 편안함, 본질적인 그리움이 있는 그것을 끌어내기 힘들것이라 확신했고, 우리는 공연 전에 시민예술단을 위한 웍샵을 해야한다는 것에 마음이 모였다.

웍샵은 '나의 생애사' 나눔이라는 엄청난 주제였다.

모두가 긴장했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우리는 주멤버들끼리 먼저 사전연습 웍샵을 해보면서 이것이 맞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생애사 나눔을 통해 예술단은 끈끈해졌고, 몸짓 웍샵과 리허설을 통해 몸의 움직임이 어떻게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작을 잘 따라하고 못하고 보다는 내 존재로 두 발로 우뚝 서고 그 존재의 에너지로 춤을 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명한명 익혀가기 시작했고 모두가 너무나 진지했고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웠다.

첫 리허설날, 사진과 영상을 보고서 소리를 지를뻔 했다.. 너무 좋아서!

그렇게 그렇게 연습의 시간과 경험이 쌓였고, 공연의 성공은 사실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실이었다.

과정을 소중히 충실하게 해나가고 주제의 본질을 모두가 진지하게 마주하자 그 자리에 결실의 '꽃'이 피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시민예술단과 스텝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두 손 한가득 피어낸 '꽃'이다.

그리고 이 공연을 보시는 관객들의 가슴에도 따스한 고향의 '꽃'이 한송이씩 피어나기를 소망했다.

시민예술단과 감독님과 스텝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해서 정말로 영광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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