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눈 뜬 자들의 도시 (City of the Awakened)

장르         이동형 거리극 (Movable Street Theater)

역할         작/연출/PD/인도자 이상│영상 김승환│디자인 고지연│사운드/목소리 박진아│배우(영상)조혜림

런타임     60분내외

장소         일상공간 / 공공장소 / 사적공간 / 도시 ; 제주시청 대학로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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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았을 때, 그제서야 들려오는 소리들과 선명해지는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이동형 거리극 ‘눈 뜬 자들의 도시’는 매회당 1명의 관객에게 눈을 가리고 인도자와 함께 도시를 여행할 것을 제안한다. 시각이 제한된 관객은 다른 감각을 통해 익숙했던 도시를 낯설게 감각하고, 처음 만나는 인도자와 함께 도시를 자유롭게 산책하는 시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적 인식의 변화를 경험한다.

          본 공연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상’은 2018년 프랑스 극단 아르펑터의 연출가 에르베 르라후드가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여하면서부터 도시를 주제로 기억과 시간, 공간과 감각에 대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첫 작업으로 2018년 서울 용산역 일대에서 진행된 ‘보이지 않는 도시 – 도시의 시간, 인간의 시간’(2018 서울거리예술축제 협력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이 도보로 한 마을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관객들 스스로가 지닌 보이지 않는 도시로의 내면적인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동형 창작물 공연에 공동창작자로 참여했다. 두 번째 작업으로 같은 해 서울 광나루역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서 진행된 거리극 ‘ㅂㅇㅈ ㅇㄴ ㄷㅅ’(2018 서울문화재단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싹브리핑)를 쓰고 연출하며 사적공간과 공공공간,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간의 ‘충돌’을 일으켰다. 세 번째 작업으로 이동형 거리극 ‘눈 뜬 자들의 도시’(2020 제주문화예술재단 신진예술가 지원 다원예술) 를 쓰고 연출했다.

 

          도시 작업에서는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도시 자체가 주제이자 소재가 되며 동시에 어떤 행위의 배경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도시와 사람 사이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들을 시적 상상으로 풀어낸다. 그 형식과 내용에 참여하게 되는 관객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게 된다. ‘그 관점의 내용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오롯이 관객의 내면에 존재한다.‘ 라고 답할 수 있다.

          # 한 사람을 위한 공연

          작업을 하며 ‘공연을 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공연을 만든다는 본질적인 요소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 외에 현실적인 부분들. 이를테면 출연진, 스텝들과 일정을 다 맞추어야 하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노동에 대한 인건비를 확보해야 하고,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공연 한 번 하는 것이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작업 중 하나 정도는 관객과 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연형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로 ‘일상의 도시공간’에서 작업하는 특성을 고려하여 그러한 자유로운 공연형식에서 어디까지 관객과 나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지 등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한 사람의 관객과 내가 함께 별도의 장소협조와 같은 과정 없이도 도시공간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공연을 만들게 되었다.

 

          # 관객의 선택권과 도시라는 시공간

          관객은 사전예약을 통해 공연에 참여한다. 이 때, 공연시간을 관객이 정하도록 했다. 작업을 할 때 마다, 작업 안에서 관객과 어떤 평등하거나 불평등한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보통은 '작업 안에서 관객을 어떤 상황에 놓을 것인지?' 라는 형식적인 고민을 하는데, 이 공연에서는 관객이 낯선 사람인 인도자에게 온전히 공연의 시간을 의지해야 했기 때문에 공연과 관련된 어떠한 것이라도 관객에게 선택권, 결정권을 주고 싶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창작과정에서 매 시간의 도시가 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아침에만 들려오는 새소리, 한 밤중에 맡을 수 있는 냄새, 번잡한 시간대의 소음 같은 것들. 같은 도시도 시간에 따라 다 다른 공간이 되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미 도시가 도시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연출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도시를 관객과 함께 감각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정한 의도를 갖고 특정 시간의 공간을 포착해서 공연시간을 정하고 활용하기보다는 관객이 원하는 시간에 맞추어서 그 순간만의 도시를 함께 경험하는 것이 이 작업에서 더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실재하는 일상의 도시 자체가 공연이기 때문에 관객뿐만 아니라 도시의 모든 것 심지어 지나가는 행인들도 이미 극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예를 들자면, 눈을 가리고 걷는 관객의 귀에 들리는 행인들의 대화소리가 마치 배우의 대화소리처럼 들리게 되는 효과들이 있었다.

 

          # 작업구조

          사전예약을 한 관객은 공연 2일 전, 카카오톡 오픈채팅 1:1대화방에 초대된다. 여기에서 공연장소 공지를 포함한 안내가 진행된다. 공연 전 날 밤에는 음성메시지가 전송된다. 음성메시지에서는 관객을 이 공연, 극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연 당일에 약속장소에서 인도자를 만난 관객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인도자와 함께 1시간 가량 도시를 산책하며, 여행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가 만들어내는 소리, 냄새, 촉감 등을 감각하게 되고, 몇 몇 지점에서는 극의 서사를 파편적으로 듣게 된다. 마지막 장소에 도착한 관객의 손에는 인쇄물이 쥐어지고, 관객이 눈을 떴을 때 인도자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이다. 혼자 남은 관객의 눈에 비로소 도시의 모습이 다시 담기게 되고, 관객은 인쇄물의 내용을 통해 내면적인 여행을 조금 더 지속한 뒤, 다시 도시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 작업서사(세계관)

          다시 세워지거나 기억될 가망이 없는 이름들의 잿더미를 긁어모으던 한 노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노인은 평생 도시들을 횡단한 여행자였다. 오랜 시간 동안 노인은 보지 못함으로서 느끼는 부재를 황홀히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눈을 감았을 때, 그제서야 들려오는 소리들과 선명해지는 이름들이 있었다. 여정은 이어졌고 노인이 눈 뜬 자들의 도시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노인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했다. 노인을 잊은 도시의 시간이 저물어가고 있다. 하지만 노인은 언젠가 우리와 같이 눈 뜬 자들의 도시를 여행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기억과 흔적을 도시 곳곳에 숨겨 놓았다. 노인과 노인의 흔적을 찾아, 노인이 찾고자 했던 그 무엇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것은 무엇일까?

 

          # 작업과정

          먼저 형식을 생각했다. 한 사람을 위한 공연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하면 관객이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감각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일차원적인 방식에 대해서 고민했다. 리서치를 하면서 시각을 제한하는 방식을 찾게 되었다. 이후에는 공연 장소인 제주시청 일대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 자주 산책하고, 멈춰서 눈을 감고 있어보면서,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건네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서 활용할 요소들(공중전화, 엘리베이터 등)을 발견하고, 동선을 구성했다. 이야기는 그 다음이었다. 이 작업이 장애체험처럼 비춰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장애를 너무 단순화하고 대상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작업 목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여행하는 이유를 서사적인 언어로 관객에게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극의 세계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관을 만들고 나서는 내가 만든 이야기와 이 작업의 레퍼런스인 이탈로 칼비노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내용들을 조합 해체 재구성하고, 내가 지닌 실재하는 삶의 기억과 허구의 기억을 섞어가며 이야기 조각들을 만들고 연결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이야기의 연결점들을 다시 파편화했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 이어지지만 명확히 이어지지는 않는데 또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도 아닌 짧은 이야기 파편들이 이어지는 형태로 음성텍스트를 구성했다. 이는 공연 안에서 관객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온전한 서사를 통해 명확한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뉘앙스는 연결되지만 내용은 파편화되어 끊어진 부분의 여백들을 제공함으로서 관객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렇게 창작된 텍스트를 녹음한 음성은 감정이 배제된 느낌으로 이야기전달에 집중했다. 어떤 특정한 캐릭터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중성적인 존재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느낌을 선택했다. 이와 반대로 인도자는 관객과 일상적인 언어로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관객이 지나온 공간과 삶의 기억들을 환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도록 했다. 인쇄물은 작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아우르며 그 시간들을 복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는데 조금씩 내용을 비틀었다. 이를테면, 어떤 공간에서 관객은 ‘당신은 여기에 온 적이 있습니다.’ 라는 음성텍스트를 듣게 되는데, 인쇄물에서는 ‘당신은 여기에 온 적이 없습니다.’로 써있다든지. 그렇게 관객으로 하여금 이게 지금 극인지 실재인지 끝난건지 안 끝난건지,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상황에 놓고자 했다. 그 이유는 이 공연이 관객의 삶 안으로 극이 들어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관계를 맺고, 극의 세계로 초대하고 마무리하는 시간, 공연 장소에 오는 시간, 공연에 참여하는 시간, 공연이 끝난 후의 시간 모두 관객은 현실 속에 존재한다. 도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실재하는 도시와 극적 요소가 결합된 도시를 같은 시간에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도시는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작동하지만 도시를 인식하는 관객의 경험이 변화함으로서 도시가 변형되는 것이다.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는데 관객의 내면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공연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그랬을 때, 관객은 자신에게 익숙했던 일상적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인지하며 새롭게 바라보게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사람들의 일상과 상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현실에서 허구와 실재가 뒤섞인 시간을 관객이 보내길 원했고, 사실 우리는 허구와 실재가 뒤섞인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작업은 그 현실을 극과 현실의 결합속에서 어떻게 다시 보게 만들것인가? 라는 고민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관객들이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경험하면서 스스로가 어떻게 세상을 감각하고 지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편안하고 즐겁기를 바랬다. 또한 낯선이에게 스스로를 온전히 의지하는 시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적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길 원했다.

           본 작업은 초연 이후,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지원하는 영상콘테츠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작업을 진행하며 먼저 생각한 것은 이 공연의 경우 공연기록영상을 3자에게 공유하는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이 공연은 많은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특정 공간에 잠시 존재하다 사라지는 순간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순간을 기록해서 공유한다 한 들 본질적으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이라는 것은 감각적이고, 시적인 영역의 세계라고 믿고 있으며,  그 순간을 기록하고 편집해서 공유한다 하더라도 그런 순간이 다시 재현되거나 공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타인의 공연과 기록물을 보았던 경우에 있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차이가 큰 경우가 많았고, 개인적으로 이 지점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 공연을 영상매체로서 기록하고 공유한다고 했을 때는 영상매체로서 공연을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 공연 전에 영상작가를 관객으로 리허설을 진행했고, 그가 관객으로 경험한 공연을 영상작가로서 재창작하여 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영상작가는 새로 콘티를 짜고, 배우와 장소를 섭외하고, 영상작업을 연출하였다. 실제 공연기록에 있어서는 사전예약을 받을 때 촬영동의여부를 물었다. 동의한 관객에 한하여 촬영을 진행했고, 이 때 촬영자는 숨어 있다가 관객들이 안대로 눈을 가리고 난 이후에 함께 동행하면서 촬영을 진행하였다. 관객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들까지 고려하려 애썼다. 

          ‘이상의 이상’은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작업자/단체들이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달려가고, 헤어지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그러면서 들었던 욕구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각자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영상작업 뿐만 아니라 디자인 작업을 맡아준 고지연씨, 사운드 작업을 맡아준 박진아씨와도 통상적인 클라이언트와 수행자의 관계가 아닌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