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의 살던 고향은 (Home I Lived) *2020 우리들 이방인 예술제

장르         거리극 (Street Theater)

역할         작/연출 이상│드라마터그 신현정│안무 테라│퍼포머 현애란│춤 테라, 이미선, 김기홍, 시민예술단│사운드(소리) 박진아 (음악) 김영태

런타임      30분

장소          공공장소, 사적장소, 일상공간 │수산마을 골목길

"굿처럼 아름답게"가 맞나요? - 한진오 / 후기 

          일식이 경이롭게 펼쳐지는 하늘 아래서 굿판이 열렸다. 수산1리에서 벌어진 ‘나의 살던 고향은’ 공연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건입동 공연과는 또 다른 감흥을 품은 수작이었다. 동행했던 친구는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굿처럼 아름답게라는 말을 자주 쓰시잖아요. 정말 굿이 아름다운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여태까지 봐온 굿판은 모두 슬프고 거룩하며 아팠다. 그런데 아름다웠다. 단 한 가지 공통점 때문에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었다. 굿을 집전하는 심방도 기원을 하는 신앙민도 누구 한 사람 자신의 소원을 비는 이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비원을 풀어달라는 기도 일색이었다. 되레 신의 노여움을 살 만한 잘못들은 모두 자신이 지은 것이라며 벌은 나에게 주고 축복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기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굿이 아름답게 보였다.”

          오늘 벌어졌던 ‘나의 살던 고향은’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다독이고 공생을 기원하는 연대의 굿판이었다.

 

          연대는 성스러운 전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방문객’, 정현종

 

          지난 주말, 성산 수산마을에서 진행된 ‘2020 우리들 이방인 예술제’는 외부에서 온 예술인들이 마을 안에서 보름동안 문화유목민으로 거주함으로서 주민들에게 서서히 다가가고, 관계를 맺고, 소통했던 과정의 흔적들을 공유하는 개념의 예술축제였다. 수산마을은 제2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마을이다. 축제에서 거리극 ‘나의 살던 고향은’을 공연하게 된 나 역시 강정과 수산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마을주민들과의 워크숍 및 연습과정을 통해 주민이 출연하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다. 3일로 짜여진 워크숍/연습을 구성했고, 오창현 형님을 비롯한 마을회 사무국 분들의 도움으로 여러 삼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워크숍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 10명의 삼춘들이 모였던 첫날 이후, 다음 날은 다섯 분을 만났고, 마지막 날은 결국 연습을 진행하지 못했다. 설계부실로 인한 관계맺기와 목적공유, 공연소개 등 과정생략의 문제점들을 있었다는 것을 그 때서야 파악했다. 거기에 내가 지녔던 ‘사람을 만나는 방식과 태도’가 더해져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 일로서만, 작업으로서만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편한 방식을 고려하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마을삼춘들 모두를 힘들고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축제를 기획한 오순희샘에게 공연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샘은 이 상황이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제안해주셨다. 우선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포기하지 말고, 관계를 시도해보라고. 잘 못해도 괜찮고, 결과발표에 있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다른 방식들을 기획 단위에서 고려해줄 수도 있다고. 그렇게 배려해주셨다. 덕분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 함께한 동료들 덕분에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미 워크숍을 통해 만난 삼춘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그 시간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애초에 약속되어 있지 않았던 시간을 내주어 함께 삼춘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수박을 나누어 먹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거치며, 말끔히 정리되지 않았던 워크숍 진행에 대해서도 죄송스런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만남’이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고-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하고, 시간을 보내다 만난 삼춘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삼춘이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주셨고,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꿀맛이었다. 밥을 먹으며 요즘의 근황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듣거나, 나누며 소통했던 짧고 소중한 시간들이 남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급작스레 43과 보릿고개의 기억과 연결되었던 지점과 그 순간에도 덤덤히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하던 삼춘의 모습이 강렬하게 내 기억에 남았다. 거대한 관점에서 서술되는 역사가 누락하는 무수히 많은 개인의 진실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늦게나마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환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공연을 취소하는 것은 이미 시작된 삼춘들과의 만남에 대해서 무책임한 선택이라는 확인을 공유했다. 새로 공연 구성안을 수정/제시/논의/확정하고, 작년 공연의 시민예술단 참여자들과 올 해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을 작업에 초대했다. 이전부터, 제주 곳곳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살아내고 있는 존경하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감사히 응해 준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과 함께 연습을 하고, 공연을 올렸다. 동료들, 그리고 시민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멋진 친구들의 모습을 한 명 한 명 생각해본다.

 

테라, 애란샘, 복희, 현정, 기홍
김철, 강물, 희성, 민상, 카레, 유선자, 김섬, 은두, 반영경, 하늘, 멸치, 앤디, 현주연, 효민, 햇살이, 테라짝꿍

 

          덕분에 공연을 하고, 관객들을 만나고, 삼촌들과 이루어졌던 만남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었다.

 

        사진은 삼춘들과의 워크숍 첫째날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통해 나온 그림이다. 8명의 삼춘들과 6명의 준비팀이 그린 그림들. 그 시간속에서 낯선 장소에 왔던 우리가 방문객이었을까, 아니면 낯선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삼춘들이 방문객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날 때- 작은 미소 지을 수 있는 소소한 기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존재와 존재가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느끼고 생각하고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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