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19조에서 이야기하는 양심의 자유는 모든 인간, 평범한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스스로 지향하는 것과 현실의 괴리 가운데 흔들리기도 하고, 자신의 신념을 외면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고자 할 때, 국가가 보장해야 할 의무를 명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의 정체성과 신념은 불변하거나 고정적이거나 온전하지 않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어가기도 하고, 특별한 순간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또는 우연적으로 한 어떤 선택이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필연들에 의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완결이 아닌 과정일 뿐일 것입니다. 지나온 관성과 앞으로의 지향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반성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며 처음으로 혼자 집회에 나갔습니다. 효순미선, 미군에 의한 장갑차 살인사건에 항의하는 시위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 기간이었고, 국가잔치에 와서 나라망신시킨다는 냉담했던 시민들의 반응과 너무나도 무서웠던 전투경찰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물론, 그 전과 그 이후로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구조적/직접적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시민운동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그 월드컵을 즐겼던 초등학교 6학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교사와 부모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이자 또래집단에서의 알력다툼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동시에 만화를 통해 518을 알게 되었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집, 학교 그 어디에서도 내가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던 시기, 저는 주로 길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길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인데 힘들겠다며 담배 한 까치 내어주던 홈리스 아저씨, 천막을 치고 농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후 사회운동에 대한 호기심을 만들었고,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전역 후,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싶어, 인권교육을 받았습니다. 호모포비아였던 저에게 지금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소중한 성소수자 친구들과 동지들이 생겼고, 저는 이 곳 제주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 대한문에 차려졌던 강정밀양쌍차 함께 살자 농성촌에서 기획한 행사에 놀러가 본 경험이 이후 강정마을을 방문하게 만들었습니다. 방문자에서 연대자로 그리고 이제는 그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의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때로는 함께 하며, 전쟁 없는 평화에 대해 상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앞에서 매일 낮 12시에 진행되는 문화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이 시비를 걸 때면 여전히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고, 거친 말을 쏟아내며 다툽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괴로워하기를 반복합니다. 3년 차 예비군훈련을 다녀오며 느꼈던, 신념은 신념에 따르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 수치에도 작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런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오늘을 걸어갑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완벽히 귀결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스스로 온전한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병역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자가 되어가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진실로, 전쟁에 동원되는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병역거부는 이 마음을 실천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저는 부족한 모습으로 그 선택을 확인하고, 납득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스스로의 지난 삶을 반성하는 반복이기도 합니다.

 

          저는 거리예술 또는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예술장르에서 공연을 쓰고 연출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년 전인 2018년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거리예술 유망예술가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한국과 프랑스에서 작업을 하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위해 프랑스 유학을 꿈꾸게 된 계기였지만, 저는 그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젊은 시기에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다른 문화권의 나라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시도하고자 했던 마음을, 현재 접어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비군훈련을 거부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47건의 훈련이 부과되었습니다. 10번의 경찰조사와 1번의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1심 재판에 총 10번 출석했고, 3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되었습니다. 현재도 13건의 훈련불참에 대한 6개의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쉬다 오면 된다.’ ‘꿀이다.’ 라고 이야기되어지는 예비군훈련에 참석하지 않으면 겪게 될 이와 같은 불이익들을 제가 알면서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 제가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제 신념의 근거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아마도, 저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았을 사람들일 것입니다.

 

          1950년 이 후, 2만 여명에 달하는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었습니다. 이들이 감옥에서 보낸 누적시간은 최소 35,800년에 달합니다. 그 시간 속에서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고, 사회운동으로서 병역거부를 가시화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노력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경찰과 검찰, 사법부가 정해진 수순대로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동안에도 2004년 첫 무죄판결을 시작으로 80건이 넘는 무죄판결이 이루어졌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를 직시하지 못하고, 대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의 무죄판결이 점차적으로 늘어나왔습니다. 이미, 구조와 위계라는 권력과 그에 의해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관성을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어 왔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실천과 노력들이 지난 헌법재판소에서의 병역법 위헌 결정과 대법원에서의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모든 사람들이 어떠한 신념을 가져야 하고, 그 신념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신념은 다른 존재를 혐오하고, 학살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거대한 사회구조와 문화 속에 존재하는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그 사회를 이루는 주체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변화 혹은 변함없음이 가능한 것인지. 우리가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과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해 생각합니다. 비단 미사일이 날라 다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만이 전쟁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심 구석 어딘가에서 멍하니 쭈그리고 앉아 있을 사람들과 하루 12시간 주 6일 이상의 노동을 하며 한 달 150만원 남짓 되는 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 일상에서 혐오되고 대상화되는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청소년. 건물주가 하루아침에 월세 두 배 인상을 요구하면 쫓겨나야만 하는 사람들과 국책사업과 안보라는 이름 아래 농사를, 집터를 치움 당해온 사람들. 2년 마다 거처를 찾아 떠돌며 불안감에 허덕이는 사람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공장 한 편에서 죽어가고 있을지 모를 비정규직 노동자. 경쟁에서 도태되면 스스로를 루저로 자책하게 만들고, 승리하면 그저 자신이 루저가 되지 않았음에 안심하도록 만드는 구조와 문화. 평범한 사람들을 서로 진흙탕 싸움 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 경쟁과 혐오, 불안으로 점철된 문화. 이 모든 일상들이 전쟁이라고 느낍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의 전쟁은 이 일상적 전쟁들이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누군가 샴페인을 터트리며 만찬을 즐기는 동안,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동원되어 살아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헌재판결 이전, 병역거부는 개인이 지닌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 사이에서 법리적으로 어느 것이 더 우월한 가치인지를 다투는 쟁점을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양심을 판단할 것이냐? 라는 쟁점이 되겠지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에게는 유죄가 선고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 쟁점을 넘어선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병역거부권이라는 인권쟁취를 넘어 우리에게 평화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들 것입니다. 전쟁이 우연에 의해 일어나지 않으며,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과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혐오와 차별, 착취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다는 사실들이 사람들에게 공유될 것입니다. 그 실천의 힘들이 모여,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판사님이 이 변화에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