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제목         보이지 않는 마을들 (Invisible Villages)

장르         퍼포먼스 (Performance)

역할         퍼포밍 : 이상 │오브제 제작 : 모습 │ 촬영 : 정재호

장소         제주사계바다, 알뜨르 비행장, 예래휴양형 주거단지, 비자림로, 통오름, 제주 곳곳

‘나’는 내가 만든 ‘알’에서 태어났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알’을 만들었고, ‘알’은 ‘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와 ‘알’은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궁금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우리’를 만든 것은 ‘누구’이며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인지. 그 궁금증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결국, 이 이미지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사이를 찾아 헤맨 과정의 기록이 되었다.

1 바다

제주 바다의 해양생태계는 난개발과 서식처 파괴, 기후변화와 해양쓰레기 그리고 군사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죽은 채 발견된 보호종 바다거북의 배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조각이 쏟아져 나오고, 120여 마리 남아있는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처리하지 못한 똥물 하수를 그대로 바다로 흘려보내는가 하면 밀려온 해양쓰레기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와 연안 가까이 들어선 해상풍력발전이 바다 생물의 서식처를 파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제주도정은 제주신항을 건설을 위해 또다시 엄청난 규모의 제주 앞바다를 매립하겠다고 한다. 한편, 제주바당은 2017년을 기준으로 하여, 약 30년간 평균 4.4m의 해수면 상승률을 기록하였다.

2 예래휴양형주거단지

1997년 11월 5일 서귀포시장 오광협이 예래동 일원 면적 403,000㎡의 부지에 유원지를 신설하는 내용으로 도시계획시설결정을 고시했다. 제주도(도지사 우근민)가 2003년 10월 14일 JDC를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사업 시행예정자로 지정한 뒤 약 3년이 지나, 서귀포시장(이영두)이 2006년 11월 14일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사업 실시계획을 인가했다. 그 후 국토부 산하의 JDC는 사업부지 토지 수용 절차에 나섰으나 원토지주들인 주민들과의 협의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2007년 1월6일, 그 땅은 국가에 강제수용 되었다. 땅을 빼앗긴 주민들은 소송에 나섰다. 그리고 긴 시간의 투쟁이 이어졌다. 법원에서는 국토계획법에서 정한 ‘유원지’ 즉, 공공성을 담보하는 개념과 목적이 다른 예래휴양형 주거단지 인가에 하자가 있다고 밝혔다. 돈 많은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영리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정이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고, 원심이 확정되었다. 그렇게 공정률 70%에 이르는 예래휴양형 주거단지는 ‘유령도시’가 되어, 그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예래휴양형 주거단지는 무분별한 제주 난개발을 상징하는 장소이자, 자본과 국가권력의 폭력을 막아낸 시민들이 승리한 현장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유원지’ 라는 목적대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여 진행하거나, 원래 자신이 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돌려놓으라고.

3 비자림로

도로확장공사라는 명목으로 비자림로의 삼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들이 잘려나갔으며, 비자림로 도로확장공사는 제2공항 연계도로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4 통오름

제2공항이 생기면 성산지역 10개의 오름들이 사라진다. 통오름은 그 중에서도 많이 호명되지 않는 편에 속하는 오름이다. 통오름은 물건을 담는 통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을이면 천연정원이 되는 곳으로 동쪽 사면을 빼고는 오름 대부분이 나지막한 풀들로 뒤덮여 있고 분화구 안에는 밭이 자리한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다. 분화구 둘레는 약 1km 정도로 제주올레길 3코스에 오름능선길이 포함되어 있으며, 종종 노루들의 모습이 발견되곤 한다. 제2공항 건설이 강행되면 비행기에 걸린다는 이유로 흔적도 남지 않게 잘려나갈 위기에 처해있다.

5 알뜨르 비행장과 제주도심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도민들이 농사를 짓던 삶의 터전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3만명에 달하는 제주도민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비행장이 만들어졌다. 이후, 1937년 수십만명의 중국시민들이 학살당한 난징대학살에서 일제의 대중국도양폭격기지로 활용되었다.

 

난개발을 비롯하여 물리적 거점의 상실이 정서적 거점의 상실로 이어지는 일들은 비단 특정한 장소들에서만 일어나왔던 것이 아니다.

bottom of page